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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상식 ( 월드컵 개최국의 결정, 제1회 월드컵대회, 월드컵이 남긴 진기록, 훌리건 )

by 당당282 2022.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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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상식 알아볼까요?

 

 

 

 

월드컵 개최국의 결정, 1회 월드컵 대회, 월드컵이 남긴 진기록, 훌리건

 

 

 

 

월드컵 개최국은 어떻게 결정될까요?

 

 

물론 FIFA 집행위원회의 투표로 이루어집니다. 집행위원들의 국제적 위상은 '지구촌 최고 축제'의 운명을 좌우하는 표결권을 쥐고 있는 만큼 그야말로 대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집행위원은 모두 24명으로 회장을 비롯해 대륙별 쿼터로 안배된 7명의 부회장과 16명의 집행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개최국은 집행위원회의 표를 가장 많이 받은 나라로 결정됩니다. 투표 정족수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지만 최근의 전례를 보면 과반수가 아닌 최다 득표한 국가에 개최국의 영광이 주어졌습니다.

 

 

만약 집행위원회의 득표수가 같을 경우 최종 선택의 권한은 회장에게 있습니다.

역대 올림픽 개최국을 알아봅시다. 1회 때부터 순서대로 보면 우루과이, 이탈리아, 프랑스, 브라질, 스위스, 스웨덴, 칠레, 잉글랜드, 멕시코, 서독, 아르헨티나, 스페인, 멕시코, 이탈리아, 미국, 프랑스, 한국과 일본 공동 개최, 독일 순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공동 개최한 2002년 월드컵은 제17회입니다.

 

 

 

 

역사적인 제1회 월드컵 대회가 치러지기까지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개최국인 우루과이는 이미 두 차례의 올림픽 우승국으로 세계적인 축구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1928년 건국 100주년을 맞아 월드컵 개최를 신청했는데 이때 함께 개최 의사를 밝힌 나라는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스웨덴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루과이에서 참가팀의 여비와 체제비를 모두 부담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아 결국 개최국으로 선정됐답니다.

 

 

월드컵 원년 대회는 그리 순탄하지만은 못했는데 유럽 국가에서 아무도 참가 신청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교통난, 남미의 정세 등의 이유 등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유럽의 축구 강국으로서의 자존심이었습니다.

결국 프랑스, 루마니아, 벨기에, 유고슬라비아만이 유일하게 유럽 대표로 참가했습니다.

1930713일 센테나리오 스타디움의 센트럴파크 구장에서 개막된 우루과이 대회는 참가국이 겨우 13개에 불과해 예선도 없이 치러졌습니다.

 

 

우승은 역시 대단한 열의로 승부에 임했던 개최국 우루과이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우루과이와 결승전에서 맞붙은 아르헨티나의 국민들은 심판의 불공정한 판정을 비난, 우루과이 영사관에 난입해 급기야 두 나라 간의 국교 단절 사태까지 발생했답니다. 아무튼 이 대회는 55만 명이 넘는 관중과 25만 달러 이상의 재정적 수익을 올려 운명면에서는 성공적인 대회였다고 합니다.

 

 

 

 

월드럽이 남긴 진기록 이모저모?

 

 

월드컵 축구사에 첫 번째 골의 주인공은 프랑스의 루이 졸랑, 그는 1930년 우루과이 대회에서 벌어진 첫 경기인 멕시코전에서 전반 17분에 선취골을 뽑아내 프랑스의 41 승리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멕시코의 마누엘 로사스는 1회 대회에서 페널티킥으로 첫 득점한 선수로 기록돼 있습니다. 반면 칠레의 카를로스 비알이란 선수는 프랑스전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해 첫 페널티킥 실패라는 불명예를 남겼답니다.

 

 

지금까지 치러진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는 브라질의 호나우두로 15골을 기록했습니다. 2위인 독일의 뮐러는 멕시코 대회에서 단독으로 10골을 성공해 그 해 득점왕의 영예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 대회에서 골을 제일 많이 넣은 선수는 따로 있습니다. 프랑스의 퐁테느 선수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1958년 스웨덴 대회에서 6게임에 출전, 13골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너무도 유명한 축구황제 펠레는 줄 리메 컵을 브라질에 안겨줬지만 한 번도 득점왕이 되지 못했습니다.

브라질 선수들의 고른 득점력 때문이기도 샜지만 펠레의 명성에 질린 상대 수비수들의 집중적 마크가 대단했었거든요. 펠레는 총 12골을 기록해 월드컵 통상 개인 득점 부문 3위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월드컵 축구의 악동 '훌리건'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종종 축구 경기를 보다 보면 축구장을 난장판으로 만들던 광적인 팬들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을 겁니다. 훌리건이라 불리는 축구팬들입니다. '훌리건(HOOLIGAN)'이란 런던에서 악명을 떨쳤던 아일랜드 출신의 불량배 집단의 이름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 스포츠 현장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깡패들을 가리키는데 영국의 하층민인 이들은 축구에 관한 한 가히 광적인 팬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경기에서 지면 경기장 안팎에서 난동을 부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기도 합니다. 또 월드컵이나 유럽컵 경기가 있을 때면 원정 응원까지 가서 현지 팬들이나 경찰과 곧잘 충돌하곤 합니다. 1986년 유럽컵 결승전에서는 난투극을 별여 많은 사상자까지 발행했습니다. 이 난동을 계기로 잉글랜드 축구 클럽에서는 유럽 클럽 모든 대회에 출전을 금지당하는 수모를 겪기까지 했습니다. 보다 못한 영국은 축구장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었던 입석을 폐지했습니다.

 

 

 

 

월드컵 대회 9번 우승한 '축구 대륙' , 남미의 저력은 무엇일까요?

 

 

남미 축구는 지금까지 18회까지 열린 월드컵 대회 역사상 9번에 걸쳐 우승컵을 차지해 세계 축구를 리드하고 있습니다. 남미 축구연맹 소속 10개국 가운데 브라질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스페인 식민지였다는 것은 모르셨을 겁니다. 남미 국가들은 자연환경과 인구 구성도 모두 다르지만 축구에 관한 열정과 재능만은 가히 엄청나다고 합니다.

 

 

무역에 종사하던 영국인의 보급으로 시작된 남미 축구는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에서 급속도로 발전했습니다. 특히 브라질은 월드컵 3회 연속 우승 등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적인 축구 강국입니다. 중앙아메리카의 멕시코는 월드컵을 두 번이나 유치했고 열한 번이나 본선에 진출하는 저력을 보여준 축구 강국입니다. 한편 북아메리카의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는 위의 나라들보다는 축구의 인기가 덜한 편인데 미국은 1996년이 되어서야 메이저리그 축구가 발족됐습니다.

 

 

 

 

월드컵을 개최하면 돈도 벌 수가 있을까요?

 

 

월드컵이 '무한한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불려지면서 세계 각국에서는 월드컵 대회를 개최하고자 그 유치 경쟁이 대단합니다. 우리나라 역시 다양한 로비와 노력을 통해 일본과 함께 2002년 월드컵 대회 개최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월드컵 개최를 통해서 상당한 생산 유발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월드컵에서 얻어지는 부가 가치 유발 효과는 경제적 이익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의미는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월드컵의 파급 효과는 돈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정치, 외교, 사회, 문화적인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게 됩니다. 이것이야 말로 월드컵 유치로 인해 얻게 되는 최대 장점인 셈입니다.

간단히 살려보면 정보 통신 등 첨단 산업과 스포츠 관련 산업이 발전하고 전통문화와 관광 자원 홍보로 국가 경쟁력이 높아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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